남양주 화도마석5일장 탐방기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창밖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은 바로 그 유명한 화도마석5일장을 가는 날! 사실 전통시장이라고 하면 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진짜 보물 같은 곳이야!”라며 극찬했던 그곳이었다. 반신반의하며 발걸음을 옮겼는데, 화도역에서 내려 걸어가면서부터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게 뭐야? 장터 입구부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게 아닌가! 마치 축제장 같은 분위기였다. 5일장이라고 해서 그냥 소규모 시장일 줄 알았는데, 웬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쭉쭉 늘어선 좌판들과 상점들이 펼쳐져 있었다. “와, 이거 완전 장관이네?”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본격적으로 탐험을 시작했다.
첫 번째 코너를 돌자마자 마주친 건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나물 좌판이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호객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고, 총각! 여기 고사리 좀 봐! 내가 직접 산에서 캤어!” 아직 뭘 살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벌써 고사리 한 봉지가 손에 들려있었다. 할머니의 마케팅 스킬에 완전히 당한 거다. 게다가 가격을 물어보니 마트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라니! 이미 첫 번째 전리품을 획득했다.
그렇게 한 봉지 들고 장터 한복판으로 향했는데, 먹거리 코너에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넋을 잃었다. 김치전, 파전이 지글지글 부쳐지는 소리, 떡볶이에서 올라오는 매콤한 냄새, 순대국밥 냄새까지 어우러져서 저절로 침이 고였다. 특히 한 아주머니가 파는 호떡은 정말 예술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콤한 설탕이 터질 듯 들어있는데,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아, 이게 진짜 호떡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편의점 호떡은 뭐였나 싶을 정도였다.
호떡을 입에 물고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빈티지 소품 파는 할아버지 좌판이었다. 온갖 옛날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70년대 라디오와 옛날 성냥갑 컬렉션이었다. “이거 다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라고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시며 “아, 이게 다 내 인생의 역사야. 하나하나 사연이 있어”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렇게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각 물건마다 숨겨진 스토리를 들었는데, 결국 작은 옛날 시계 하나를 샀다. 물건보다는 그 이야기가 더 값진 느낌이었다.
처음엔 가격표대로 사려고 했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아주머니가 귀띔해 주었다. “아이고, 그냥 사지 말고 깎아봐!” 그렇게 인생 첫 흥정에 도전하게 됐다.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점점 재미있어졌다. 특히 옷 파는 아주머니와의 흥정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이거 3만원이에요.” “어머, 비싸네요. 2만원 어때요?” “안돼안돼, 최소 2만5천원!” “그럼 2만2천원?” “아이고, 총각이 너무 깎네. 2만3천원!” 결국 2만2천원에 낙찰됐다. 이 과정이 왜 이렇게 스릴 넘치고 재미있는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장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들 간의 따뜻함이었다. 길을 몰라 헤매고 있으니 할머니가 직접 데려다 주시고,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니 청년이 도와주고, 먹거리 사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덤으로 하나 더 주시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과일 파는 아저씨였다. 사과를 고르고 있는데 흠집 난 사과를 보며 고민하고 있자 “이거 흠집 났지만 더 달아. 먹어봐!”라며 과감하게 한 조각을 잘라서 맛보게 해주셨다. 정말로 꿀처럼 달았다!
가장 놀라웠던 건 나같은 젊은 사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든 세대가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SNS로만 소통하던 내가 이렇게 직접적이고 따뜻한 대화를 나눌 줄 몰랐다. 특히 한 할머니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 인터넷으로만 사더라고. 그런데 너는 여기까지 왔네?” “네, 처음 와봤는데 너무 좋아요!” “그럼 다음에도 와. 할머니가 더 맛있는 거 준비해둘게.”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곳이 바로 전통시장이었다.
해가 기울어가며 장터도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꽃 파는 할머니 좌판이었다. 작은 화분 하나를 사면서 “이거 어떻게 키워요?”라고 물었더니 10분 동안 꽃 키우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집에 돌아가는 길, 양손 가득 든 전리품들을 보니 뿌듯했다. 할머니표 고사리와 나물들, 아저씨가 골라준 달콤한 사과들, 스토리가 담긴 빈티지 시계, 흥정으로 산 따뜻한 조끼, 그리고 마지막 선물 같은 작은 화분까지.
화도마석5일장에서 얻은 것은 단순히 물건들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 흥정의 재미와 스릴,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 옛것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 무엇보다 ‘진짜’ 장터의 매력을 느꼈다. 이제 왜 친구가 그렇게 극찬했는지 알겠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다음 장날은 언제일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아, 그리고 꽃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화분에 물을 줘야겠다. 화도마석5일장의 추억과 함께 말이다. 진짜 보물은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