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포기하기엔 네 인생이 너무 길어” – 공부를 놓아버린 아이에게

12년의 과거, 그리고 남은 88년의 미래

초등학교 4학년, 겨우 열한 살의 나이에 스스로를 ‘수포자(수학 포기자)’라 부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이미 ‘노력해도 되지 않더라’는 뼈아픈 좌절감을 경험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지나온 시간은 고작 12년 남짓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88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데, 고작 10여 년의 경험만으로 남은 생의 가능성마저 닫아버리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부를 해 본 경험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공부를 포기하려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고, 성적표 대신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비춰줄 8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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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부는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행위다

아이들은 흔히 공부를 ‘엄마를 위해’, 혹은 ‘좋은 대학이라는 간판을 위해’ 억지로 하는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오해부터 풀어주어야 합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소중한 나의 인생을 귀하게 여기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하며 나를 가꿔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공부입니다. 공부는 남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을 대접하고 사랑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임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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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른의 삶을 지탱하는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훈련

수학 공식 하나, 영어 단어 열 개를 외우는 것이 당장 내일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지는 않습니다. 공부의 진짜 목적은 시험 점수라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는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때 반드시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기르는 훈련장입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끝까지 쥐고 늘어지는 끈기, 하기 싫은 일도 묵묵히 해내는 인내심. 책상 앞에서 흘린 땀방울은 훗날 아이가 사회라는 거친 바다로 나갔을 때 든든한 닻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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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 꿈을 지켜줄 최소한의 ‘안전장치’

스티브 잡스나 손흥민 선수처럼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무기(꿈과 끼)가 아주 명확하다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직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릅니다.

나만의 무기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업은 세파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가장 튼튼한 방패이자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섣불리 이 안전장치를 벗어 던지지 않도록, 아이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탐색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학업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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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엇이든 성공으로 이끄는 ‘마법의 동력’

세상 모든 성공의 원리는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유혹을 참고, 매일 꾸준히 실행하는 것.

지금 당장 성적을 1점이라도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본 경험은, 아이의 내면에 깊게 각인됩니다. 이 ‘성공해 본 감각’은 나중에 아이가 정말로 가슴 뛰게 좋아하는 분야를 만났을 때, 그것을 폭발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과 동력이 됩니다. 공부로 다진 지구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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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장 정직하게 나의 ‘뛰어남’을 증명하는 방법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타인보다 인정받고 뛰어나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특히 또래 집단에서의 인정이 중요한 학창 시절, 공부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투명한 방법입니다.

부모의 재력이나 외모가 아니라, 오직 내가 투자한 시간과 땀방울로 지금 내가 속한 사회(학교)에서 최고가 되어보는 경험. 그 짜릿한 주도권의 경험을 아이가 꼭 한 번쯤 맛볼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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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거창한 목표보다 중요한 ‘성취감’ 그 자체

“너 커서 판검사 되려고 공부하는 거야!”라는 거창한 목표는 아이를 짓누릅니다. 때로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거대한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해내서 느끼는 ‘성취감’입니다. 수학 60점을 맞던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80점을 만들어냈을 때의 그 벅찬 감동, 80점이 100점이 되었을 때의 환희. 이 작은 성취감의 조각들이 모여 아이의 튼튼한 자존감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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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래의 신기루에서 벗어나 ‘오늘’에 집중하기

아이들에게 “1년 뒤에 전교 1등 하자”, “나중에 좋은 대학 가야지”라는 말은 와닿지 않습니다. 먼 미래를 목표로 세우면 아이들은 자신에게 아주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는 착각에 빠져 오늘을 낭비하게 됩니다.

미래는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벽돌이 쌓여 만들어지는 성입니다. 아이의 시선을 먼 미래에서 ‘지금 당장’으로 돌려주세요. “오늘 영어 단어 20개만 완벽하게 외워보자”, “수학 문제집 딱 4페이지만 집중해서 풀어보자”와 같이 눈앞에 잡히는 구체적인 현재의 미션을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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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부해’라는 잔소리 대신 ‘공부법’을 선물하세요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할)

어쩌면 가장 뼈아픈 포인트일지도 모릅니다. 공부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아이에게 그저 “들어가서 공부해!”라고 소리치는 것은 어른의 무책임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포기하려 한다면, 의지력을 탓하기 전에 ‘방법’을 몰라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의 시간 동안 공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를 함께 고민하고 제시해 주세요.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잔소리가 아니라, 아이의 성향에 맞는 ‘공부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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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들께…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 순간 아이의 곁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가 다음 88년의 궤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아이와 마주 앉아 이 여덟 가지 이야기 중 아이의 마음에 닿을 한 가지를 골라 조용히 들려주시는 건 어떨까요?

결코 빚지지 마세요

돈이 없으면 사람은 여러 면에서 비굴해집니다.

돈이란 사람을 휘두르고 자존감을 해치는 일로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죠. 따라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첫 발을 떼는 젊은이라면, 결코 돈의 노예로 직행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바로 빚을 지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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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쉽게 빚을 얻어 이것저것 생활해 본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평생 빚에 허덕이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사고 싶은 것, 해야 될것 같은 일, 서둘러 경험해 봐야 할 것 같은 곳에 돈을 빌려서라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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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부터 자주 빚져 본 사람은 남의 돈이 가진 무게에 무뎌지고 더 큰돈을 빌리는 사람으로 발전돼 ‘부’라는 것을 평생 남의 이야기로 듣고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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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은 친구를 만나 외상으로 산 새 옷을 자랑해요. 비싼 새 옷이 대단한 듯 말하겠지만 외상값을 여기저기서 메우고 때우며 사는 한 결코 부는 갖지 못합니다. 무서운 사실은 빚은 사람의 자존감을 빼앗고 자신을 경멸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먹고 입고 걸치는데 쓴 돈을 갚느라 투덜투덜하며 일하죠. 이런 일이 어떤 현상으로 보이세요? 이거야말로 ‘이미 죽은 말’ 값을 갚기 위해 일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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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이나 물건을 먼저 가져다 판 다음 대금을 지불하는 상업적 형태는 제외하고 이야기해 봅시다. 옛날

퀘이커 교도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 “절대 외상을 지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만약 외상으로 무언가를 샀다면 그 돈을 밑거름 삼아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가르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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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엇 비처 스토(19세기 가장 인기 있던 베스트셀러-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저자)는

“시골에서 땅을 살 때라면 어느 정도 빚을 지는 것이 좋다”라고 했어요. 하지만 비처 역시 “먹고 ” 마시고 입는 데는 빚을 얻으면 안된다”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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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상점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사는 어리석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는데도 빚을 아무렇지도 않게 집니다. 그 쓸모없는 것들에 지불된 외상이 모두 모이면 그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채무이행을 하라며 목을 조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변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는 그 기한을 두세 달 뒤로 미뤄놓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친구는 돈을 빌려 줬다는 걸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니 어쩌면 갚지 않아도 될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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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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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줬다면 그 사실이 잊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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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기로 한 때가 됐을 때 곧장 채무를 이행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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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빌려준 사람은 결코 자신이 빌려준 돈의 행방을 잊지 않습니다. 세상에 빚쟁이만큼 기억력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 돈을 갚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약속을 어긴 것이고 왜 돈을 갚지 못하게 됐는지 거짓말이라도 꾸며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변명을 하거나 다른 곳에서 빚을 내서 갚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그럴수록 빚의 수렁은 점점 깊어질 뿐이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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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젊고 잘생기고 게으른 알바생이 있었어요. 어느 날 사장이 이렇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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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본 적 있나?”

“본 적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 만나 봤겠지. 달팽이를 앞질러 본 적이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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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굴욕적이고 꼬챙이 같은 질문이죠? 하지만 사장은 알바생을 지켜봐 왔고 그가 사는 행동 방식을 비꼰 말이었습니다.

젊은이가 가져야할 열심히 하는 태도가 아마도 보이지 않았던가 봅니다. 비단 젊은이만 열심히 살고 빚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모두에게 적용돼야 마땅한 원칙입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분명 서둘러 올 겁니다. 그리고 돈을 갚으라고 재촉할 거예요. 만약 갚을 돈이 없다고 하면 당장 각서를 쓰라고할게 틀림없습니다. 거기에 이자를 덧붙여 써 놓겠죠. 이제 채권자는 자유가 사라집니다. 각서를 써 주고 나면 족쇄 하나를 찬 셈이나 다름없거든요. 그야말로 ‘헛돈’을 쓰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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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는 자고 일어나면 밤새 이자가 붙어 하루가 지날수록 더 가난해지게 됩니다. 자유롭게 지내던 하루가 아니라 하루를 지낸 바람에 이자가 늘어 있는 그런 날을 보내게 되는 거예요. 잠을 자는 동안 더 가난해지는 형국이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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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매우 훌륭한 하인으로 만들 수도 있고 한편으로 무서운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돈이란 어느 면으로 보면 불과 같습니다. 어느 쪽으로든 강렬하게 타오르기 때문이죠. 돈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즉 이자가 계속 붙어 돈을 내야 하거나 끊임없이 쌓여갈 때 그 돈은 나를 비참한 노예 신세로 만들고 맙니다. 하지만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면 돈보다 헌신적인 하인이 또 없습니다. 이자를 내는 게 아니라 이자가 불어날 수 있도록 관리만 잘하면 돈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종’입니다. 이런 돈은 주인이 보든, 보지 않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이나 낮이나 가리지 않고 주인을 위해 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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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적은 돈도 빚을 지고 갚아야 할 이자를 내는 삶과 매우 적은 돈이라도 이자가 붙어 하루가 지날 때마다 돈이 불어나고 있는 생활은 양극단으로 갈린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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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지배당하지 않는 길은 빚을 지지 않는 길뿐입니다. 만약 지금 빚이 있다면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의 비용을 제외하고 가장 빠르게 서둘러 청산하기 바랍니다. 쓰는 돈을 아끼면 빚 갚을 돈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입니다. 빚은 빚진 시간이 길수록 사람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프로그램화 돼 있습니다. 빚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떤 연금술사도 찾아내지 못한 현자의 비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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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대와 시대를 넘어 지금껏 변치 않는 부의 기본기

수능 출제 교사 24명 입시학원에 문제 팔아_우리의 노력은 이렇게 무시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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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용>

▶ 대학입시 수능, 모의고사 출제 교사 24명 돈 받고 입시학원에 문제 팔아.
▶ 최고 5억 가까이 받은 교사로 있음.

평범한 우리 학생들의 노력은 이렇게 무시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좋은 대학교에 가야 성공한다’

이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 학생들은 10대의 전부를 좋은 대학교에 가서 성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의 시작을 출발하고자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10시간 이상 공부하면서 수능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서이다. 이런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이번 사건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교실 안에는 고가의 사교육을 받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존재할 것이다. 족집게 교사라고 불리는 선생님이 있는 고가의 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집안이 부유하여 사교육에 부담이 없다. 사교육을 받아서인지 성적도 좋다. 반대로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성적이 뒤쳐진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시험 성적으로 따라가지를 못한다. 노력은 훨씬 더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뒤쳐진 학생은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구나. 타고난 공부머리 이거나 사교육의 힘이야. 차라리 타고난 것이라면 인정이라도 쉬울 텐데…

이렇게 입시의 경쟁 속에서 힘들어하고 절망한 학생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까? 과연 위로가 될까? 수능 출제 위원이라면 적어도 국가에서 인정받은 선생님들 이었을텐데 ‘돈’ 앞에 자기의 직업적 윤리의식까지 무너뜨려야 했을까?

음…결국은 우리가 가장 쫒았던 것은 돈 이였나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가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예쁘게 포장해서 인생의 성공이라고 하였을 뿐이지 않을까.

교육 현장에서 공정성은 무너졌다. 이미 돈많은 사람이 이긴 게임이다. 사교육을 통해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미리 알고 문제를 풀면 이기는 것이다. 게임에서 치트키 또는 핵을 쓰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돈에 지배되어 버린 교육계의 양심. 그리고 무너져 버린 우리 학생들의 노력.

어떻게 해야 할까??